중국교회의 지도자 정광훈(丁光训)주교께서 2012년 11월 22일 오전 10시 강소성(江苏省) 남경(南京)시에서 향년 98세로 돌아가셨다. 1915년 9월 20일 상해에서 태어난 정광훈 주교는 미국 성공회가 설립한 상해 성 요한 대학교에 입학하였다. 졸업 후, 성공회 사제로 서품 받은 그는 YMCA간사, 중화성공회 상해 구주교회(救主堂)보좌사제, 상해국제교회(国际教堂) 사제로 봉직하였다. 그 후, 캐나다에서 기독교학생회 선교간사로 일하다가 미국 뉴욕 유니온 신학교에서 신학석사학위를 취득하였다. 그런 다음, 스위스 제네바에서 세계기독학생연맹 총무로 일하였다.
1949년 중국이 공산화 된 후, 그는 동료들의 우려와 만류를 뒤로 하고, 조국에 돌아가 사회주의체제하에 놓인 교회를 위하여 일하였다. 당시, 화동지역 12개 신학교가 남경에서 금릉연합신학원으로 합병되었을 때, 원장을 맡아서 후진양성에 힘썼고, 1955년 성공회 절강교구 주교로 피선되었다. 그러나 문화대혁명 와중에는 모든 종교기관이 폐쇄되는 바람에 그 역시 혹독한 탄압을 받으며 어려운 시기를 보내야 했다.
문화대혁명이 끝나고 개혁개방노선으로 전환되면서 중국의 종교가 복원됨에 따라 그는 다시 문을 연 금릉연합신학원 원장 및 남경대학교 부총장을 역임하면서 신학계와 지식인 사회의 가교 역할을 하였다. 동시에 중국기독교협의회를 설립하여 회장을 역임하면서 중국교회 재건에 노력하였다. 또한 애덕기금회를 설립하여 자선사업에도 힘을 쏟았다. 그리고 대외적으로는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부주석을 역임하여 정부에 대하여 종교가 올바르게 평가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였다.
정광훈 주교의 서거소식이 알려지자 중국의 최고지도자들을 위시하여 종교계, 지식인계 및 각계각층의 신자와 대중들로부터 애도의 뜻이 전해져 왔다. 11월 27일 오전10시30분 남경시 우화구(雨花区) 장례식장에서 고별식이 거행되었다. 많은 꽃들로 둘러싸인 그의 몸 위에는 중화인민공화국 국기가 덮어져 있었고, 호금도(胡锦涛)주석을 비롯한 중국지도부의 애도의 전문과 많은 이들의 애도 속에서 화장을 치뤘다. 故 정광훈 주교의 추모예배는 12월 8일 오후 1시30분 남경 막추로교회(莫愁路教堂)에서 거행될 예정이다. 고별식 뉴스: http://v.ifeng.com/vblog/news/201211/e3699808-7e63-41ef-aaa4-7645048378ea.s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