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행기간 동안 유빈이를 돌봐줄 수 없기 때문에 학교에 휴가신청을 하고, 유빈이를 데리고 여행을 갔다. 센터에서 대절한 버스를 타고 승덕까지 7시간 걸렸다. 점심식사하고 떠나서 도착하니, 저녁식사시간이 훨씬 지났다. 숙소에 짐을 풀고 거기서 식사를 했다. 숙소는 고풍스러운 곳이었다. 예전에 이곳에서 중국고전드라마를 촬영한 곳이라고 한다.

함께 온 사람 중에는 우리부부 외에 독일인 부부, 미국인부부 2쌍도 함께 왔는데, 다들 꼬마들을 데리고 왔다. 아이들이 유빈이를 졸졸 따라다니면서 잘 놀았다. 이들을 보면서 예전 남경에 있을 때가 생각이 났다. 갓난아기를 데리고 낯선 곳에 와서 산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은데, 이들은 무슨 뜻을 갔고 있는 걸까? 독일인 부부는 올해 우리랑 함께 건화회원으로 온 사람들인데, 중국어를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아서 중국어소통이 거의 불가능하다. 미국인 부부들은 여기 온지 5년, 3년 되는데, 그래도 외국인들 중에서는 제법 잘하는 편이다. 이들은 기도하면서 활동하는 곳을 찾고 있다고 한다. 다들 드러내놓고 다니진 않지만-사실, 중국에선 드러낼 수도 없는 상황이기도 하지만-신앙심이 깊은 사람들 같다.

첫날은 황제의 여름별장궁이었던 避暑山莊을 갔고, 둘째날은 라마교사원 두곳을 갔다. 청나라 황실이 대외관계를 중시여겼는데, 특별히 티벳트와의 관계를 중히 여겨서 지금 티벳 라사에 있는 포탈라궁과 같은 모습을 한 사원을 지었다. 그래서 티벳의 달라이라마가 자주 이곳에 와서 청황제에게 설법도 하였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청나라는 종교를 비롯한 대외관계에 대해서 무척 관용적이었던 것 같다. 이 당시 천주교도 성당을 짓고 포교활동을 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나라가 클수록 관용적이고 개방적이어야 하는 것 같다. 당나라도 그랬고, 원나라도 그랬고, 청나라도 그랬으니 말이다. 조선시대 박지원이 열하일기에서 이러한 청나라의 기풍을 보면서 폐쇄적이고 사색당파에 골몰하는 조선의 모습을 비교하면서 얼마나 한숨을 지었을까? 몇백년이 흐른 지금, 나는 이곳 열하(승덕)에서 박지원과 같은 마음으로 한반도를 생각해 본다.

마지막날은 방망이산에 갔다. 산정상이 넘버원과 같은 모양을 한 큰 바위가 있는 곳인데 중국사람들은 방망이산이라고 부른다. 자연적으로 형성된 곳인데 참 신기하였다. 그리 높지 않아서 아이들을 데리고 쉬엄쉬엄 갔는데도 2시간만이 올랐다.

하산 후에, 점심을 먹고 천진에 오니 밤이 되었다. 아내는 여행내내 중국음식만 먹어서 한국음식이 먹고 싶다고 해서, 한국식당가서 얼큰한 낙지전골을 먹었는데, 유빈이는 별로 먹지 않았다. 물어보니, 중국음식이 좋다고 한다. 어렸을 때부터 중국음식으로 입맛이 길들여져 그런가 보다. 다행히 나는 여행기간에 음식으로 그리 힘들지 않아서 아무 음식이든 잘 먹었다. 주님께서 나에게 아무 음식이나 잘 적응하게 해주셔서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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