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래 신부 칼럼  
 

넬라 판타지아(2010년 가을에)
작성일 : 2013-01-13       클릭 : 1069     추천 : 0

작성자 베드로  
우리 집 앞에 빈 공터가 있는데 미개발지라서 잡초와 억새풀로 무성하다. 지난 3월초에 왔을 때 아직 날이 추워서 풀도 없는 황량한 땅이었는데, 봄이 되서 풀이 자라기 시작하더니, 여름에는 무성하게 자랐다. 그런데 지금은 풀들이 누런 색으로 변해서 가을의 정취를 물씬 느낄 수 있다. 도시의 인공적 삶에선 자연의 순환을 느낄 수 없는데  다행히 집 앞에 있는 잡초덕분에 자연의 시간을 느낄 수 있어서 너무 감사하다.


 


최근에 한국에서 하는 ‘남자의 자격’이라는 프로그램을 우연히 인터넷으로 봤다. 합창대회를 준비하는 내용인데, 그 중에서 ‘넬라 판타지아’라는 노래가 강한 감동을 주었다. 3년 전 이 무렵 이 노래를 처음 들었다. 그 때는 나는 ‘나눔과 평화재단’에서 사무국장으로 재단의 설립준비때부터 일하고 있었다. 당시 그러한 활동 중 하나로 재단과 그 정신을 알리기 위한 목적으로 MBC방송국과 함께 인천문학경기장에서 콘서트행사를 준비했었다. 그 행사에서 나는 팝페라 가수 임형주씨가 부른 ‘넬라 판타지아’를 처음 들었다. 이 곡은 원래 영화 ‘미션’의 주제곡인데, 후에 이 곡에 노래말이 생긴 것을 이때 처음 알게 되었다. 그 노래를 들을 때, 나는 행사스텝이라는 것도 잠시 잊고 눈물이 날 정도로 그 감동에 흠뻑 빠져 들었다.

영화 ‘미션’은 남미에서 선교활동을 했던 예수회 선교사들의 역사적 행적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이다. 예전에 예수회에 몸담았던 적이 있던 나에겐 이 영화는 정말 각별한 영화였고, 그러기에 ‘넬라 판타지아’라는 노래 역시 그 한구절 한구절 절절하게 내 심금을 울린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 후, 나는 인터넷에서 그 노래 가사를 찾았다. 그리고 한국어로 번역해 봤다. 아래는 내가 번역해 본 ‘넬라 판타지아’의 한글번역이다.


비전(환상) 속에서 나는 하나의 세상을 봅니다
그곳은 모든 사람들이 평화롭고 정직하게 살아가는 곳이죠.
(후렴)나는 늘 자유로운 영혼을 꿈꿉니다
마치 하늘에 떠 있는 구름처럼,
그곳은 영혼 깊은 곳까지 인간을 충만케 합니다.

비전(환상) 속에서 나는 빛나는 세상을 봅니다
그곳은 밤마저 어둡지 않습니다.(후렴)

나의 비전(환상) 속에는 따스한 바람이 있습니다
그 바람은 마치 친구가 오듯, 이제 도시로 불어옵니다. (후렴)


‘판타지아!’ 흔히들 이 말은 ’환상’으로 번역하는데, 예수회의 영성 그리고 그리스도교 기도전통을 안다면 이 말은 단지 세상사람들이 말하는 그러한 환상이 아니다. 그것은 하느님께서 주시는 계시이자, 비전인 것이다. 크리스챤은 이 판타지아를 기도 중에, 관상(contemplation)중에, 심지어는 우리가 접하는 모든 일상 중에 볼 수 있다. 그 이유는 하느님께서는 끊임없이 우리에게 당신의 비전, 당신의 판타지아를 보내주시고 계시기 때문이다. 하느님은 이 판타지아로써 우리를 당신의 세계로 초대하신다.



사실, ‘하느님의 선교(Missio Dei)’에 동참하는 크리스챤, 특별히 선교사들에게 이 판타지아는 가장 근원적인 원천이다. 이것을 가장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로마에 있는 성 이냐시오성당에 있는 벽화이다. 원근법으로 그려진 이 벽화는 굉장히 ‘판타스틱’하다. 정중앙 하늘 저 높은 곳에서 삼위일체 하느님, 특별히 십자가의 예수께서 당신의 비전을 예수회 창립자인 성 이냐시오의 가슴에 비춰주신다. 그리고 이 빛이 이제 온 세상-아시아, 아프리카, 아메리카, 유럽-에 나가있는 선교사들과 사람들에게 뻗어간다. 다시말해, 기도 안에서 주님께서 이 환상을 이냐시오에게 보여주시고, 예수님과 이심전심이 된 한 사람의 비전이 이제 온 세상으로 퍼져나간 선교사들과 그곳에 사는 하느님의 백성을 통해 실현되어 나간다. 영화 ‘미션’은 바로 이 환상을 실현시켜 나간 선교사들의 영웅적인 행적을 표현한 것이고, ‘넬라 판타지아’라는 노래는 이 환상을 노래로 찬양하는 것이라 하겠다.

집앞에 있는 누런 억새풀과 그곳에서 들려오는 귀뚜라미 소리를 들으며 주님이 주시는 ‘판타지아’를 느껴본다. 그리고 이 판타지아가 이 도시로, 이 나라로 불어오길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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